본문 바로가기
헤세 읽기

헤르만 헤세 저, '수레바퀴 밑에'를 읽고_타인의 신념

by 오효영 2024. 12. 5.

타인의 신념

처음 책을 펼친 곳은 카페였다. 책 읽기 좋아 보이는 구석진 자리를 골랐고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책을 펼쳤다. 헤세는 처음이었다. 그 유명한 데미안 조차 읽어보지 못했다. 커피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헤세의 세계로의 첫 발자국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헤세의 묘사가 난잡하게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하면서도, 시골풍경에 대한 묘사가 쓸데없이 많아 보였다. 이제 좀 이야기가 전개되나 싶을 때쯤 다시 한번 장황한 묘사가 이어졌다. 더군다나, 카페의 소음은 간신히 펼친 상상의 세계를 자꾸만 일그러뜨렸다. 헤세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걸까, 책을 덮고 카페를 나갔다.

집에 와 다시 책을 펼쳤다. 은은한 주홍색 조명아래, 소리도 냄새도 움직임도 모든 것이 멈춰있는 곳. 묘사는 이런 곳에서 힘을 발휘했다. 글이 그림이 되어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그럼 그렇지, 난잡하다 느꼈던 내가 부끄러웠다. 묘사를 읽어가는 자에게는 상상을 펼칠 빈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 이후로 나는 집에서만 이 책을 펼쳤다.

묘사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언가를 건드리는 기묘한 방법이다. 헤세가 그린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고, 여기서 오는 남모를 희열이 있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단어들이 방해를 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가문비나무, 수양버들나무, 호밀밭, 부처꽃, 바늘꽃, 방죽, 우듬지,, 검색을 통해 생김새를 알게 됐고, 책장을 앞으로 넘겨 다시 읽어 내려갔다. 머릿속의 그림이 이제야 알맞은 색을 입으며 갑절은 더 다채로워졌고, 완성된 풍경 속에 한스를 가져다 놓았다. 내가 한스가 된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 이 책의 내용은 잊어버려도, 한스가 다리의 난간에 앉아 바로본 마을과, 풀밭에 앉아 낚시를 하며 바라보았던 여름강가는 잊혀지지 않으리라 믿어졌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 한스에 대해 얘기할 차례다. 많은 이들의 기대을 받았던 총명한 한 아이가 안타가운 죽음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걸까.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한스는 2년을 준비해 온 주시험 전날, 공부를 마치고 학교에서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기묘한 체험을 한다. 다리의 난간에 앉아 바라본 마을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루에 4번이나 지나가던 다리였다. 일상을 낯설게 느끼는 순간에 종종 예기치 않은 깨달음이 찾아오곤 한다. 한스도 이때부터 무언가에 홀린 듯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짚기 시작한다. 주시험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한 후로,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던 어린 시절의 놀이들을 하나둘 떠올린다. 낚시, 수영, 노젓기,, 그리고 키우던 토끼를 빼앗겼던 일. 토끼집을 고쳐주곤 했던 친구, 지금은 견습 기계공이 된 아우구스트도 함께 떠올린다. 갑자기 그는 풀썩 주저앉아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순간 손도끼를 집어 토끼집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의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스에게 있어 토끼집이란, 이제는 멀찍이 떠나가 버린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흔적이었다. 그의 도끼질은,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었고, 떠나간 것에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시험준비를 해오는 동안 그의 의지를 지탱해 주던 신념을 되새긴다. 어린 시절의 온갖 놀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친구들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거라고, 나중에는 그들을 우월한 기분으로 내려다보게 될 거라고, 그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잠에 든다.

그는 주시험에 합격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그곳에서 하일너라는 인물을 만난다. 하일너는 이렇게 묘사된다. <그는 생동감 넘치는 제어하기 어려운 인간이었다>,,, 하일너가 다른 친구와 한바탕 싸운 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특히 한스에게 인상 깊게 여겨졌을 것이다. 신학생으로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굉장히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부끄럽지도 않느냐라는 조롱 섞인 질문에도 <부끄러워? 너네 앞에서?>라고 받아친다. 하일너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런 태도에서 비롯된 여러 사건들에 의해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한스가 하일너에게 끌렸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신과 반대 성향의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하일너는 무엇에도 얽매여있지 않았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한스에게는 당황스러우면서도 동경할 수밖에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은 굳어져 있던 한스의 삶에 균열을 일으켰다. 하일너와 더 친밀해질수록 공부를 손에 잡을 수 없었고, 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뒤쳐지고 있음을 깨닫고 다시 시작해보려 했지만 정신쇠약과 고질적인 두통으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미세한 균열에 오히려 깨져버리기 쉬운 법. 하일너가 일으킨 균열은 한스의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그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자신의 현실을 목도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지만 꼬여도 한참 꼬인 것만 같다. 모든 게 의미 없이 느껴지고 그냥 죽고 싶다 생각한다. 마음을 다잡고 견습 기계공으로 첫 출근을 한다. 오랜만에 만난 아우구스트는 견습의 딱지를 떼고 숙련공이 되는 날이다. 아우그스트가 여유 있게 격려의 한마디를 하며 지나간다. 고작 하루 일했는데, 손가락이 만지지도 못할 만큼 부어올라 너무 아프다. 한스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견습기계공 따위는 자신이 경멸하던 평범한 삶이었다.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줄 알았던 이가 오히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손가락으로 다음날도 출근해야만 한다.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현실이었다.

주 시험 전날밤으로 되돌아가보자. 그가 되새겼던 신념은 과연 한스 자신의 것이었을까. 아니다, 그의 신념은 아버지의 신념이었고, 목사의 신념이었고, 교장의 신념이었다. 타인의 신념이 한스의 내면에 들어와 주인행세를 했다. 타인의 신념에 장악당한 한스, 그는 주체를 잃어버린 인간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의 성실과 인내는 오히려 쇠사슬이 되어, 더욱 그를 얽매는 꼴이 되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던 평온한 시절에는 오히려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한 인간에게 타인의 신념이 자기 옷인 듯 잘 맞는다 해도, 저항 없이 들어온 신념은 절대 체화될 수 없다. 단 하나 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 신념의 무게를 견딜 만큼의 쓰라린 아픔을 겪었을 경우다. 이 말을 다르게 말하면, 아픔 없이는 그리고 고민 없이는 신념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한스에게 주입된 신념이 주인이 되어 그의 삶을 이끌어갔지만, 한스에게는 이물질과 다를 바 없었다. 한스가 견딜 수 없는 신념이었다. 주체적인 인간 하일너와의 만남 이후로, 한스를 장악했던 이물질은 부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또한 한스가 견딜 수 없는 부작용이었다. 결국 한스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에게 이물질을 집어넣은 자에게 있다.

주체를 가진 삶은 끊임없이 질문하며 끊임없이 고민하는 삶이다. 두드리는 자에게는 문이 열리듯이 질문과 고민을 한 자만이 답을 얻는다. 이런 인생은 타인의 답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눈에 유별나게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일너를 그렇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만약, 하일너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질문과 고민으로 밤을 세웠다한들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일너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추어질지 모르는 바보가 아니었다. 다 알면서도 하일너는 행동했다. 그렇다, 주체적인 인간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용기까지 필요하다. 아니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위기의 상황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질문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눈치 보다가 결국 행동하지 못한다. 약간의 변화를 주고는 이전과는 달라졌다며 자기 위로를 하기도 한다. 타인의 눈에 맞춰 또다시 타인의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위기의 상황 이전과 다를 바 하나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에게는, 나만의 신념으로 나만의 삶을 살아갈 용기가 부족하다. 고민하자, 질문하자, 그리고 주어지는 답이 무엇이든 눈치 그만 보고 행동하자. 하일너처럼 <생동감 넘치는 제어하기 어려운 인간>이 되길 소망한다.